2000년대에 들어서서 한국교회는 ‘선교’에 매우 많은 헌신을 했습니다. 청년들을 중심으로 해서 선교단체와 학생 단체에 가입하여 선교 현장에 단기사역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교회에서는 단기 선교팀을 모집하여 훈련하고 단기 선교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단기선교와 선교여행을 통해서 현장을 보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많이 느끼고 돌아오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선교지의 환경의 열악함을 보면서 어떻게든지 돕고자 하는 긍휼의 마음을 많이 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내가 만난 예수님과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하고 싶은데, 막상 전달할 수 있는 것이 외적으로 보이는 섬김과 구제, 봉사에 국한되어 있었습니다. 더 많은 것을 하고 싶어도 ‘의사소통’의 문제로 인해서 불가능하였습니다. 언어를 조금만 더 잘했어도 더 많은 대화를 하고 복음을 전했을 텐데라는 아쉬움을 가져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선교’라고 하면 ‘해외’의 미전도 지역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최근에 다시금 ‘선교’에 대해서 생각해보면서 부각되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은 바로 우리가 사는 ‘지역사회’와 ‘다음 세대’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선교사이며 선교학자요 기독교 사상가인 레슬리 뉴비긴의 이야기를 듣고서 대학시절에는 크게 공감하지 못했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자신을 인도 선교사로 파송하던 당시 영국은 기독교 국가였는데, 1974년 은퇴하면서 고국에 돌아가보니 그곳은 이미 기독교 국가가 아니라 ‘이슬람화’ 되어 있더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인도 선교를 은퇴하면서 과거 기독교 국가가 융성했던 지역을 육로를 통해서 영국으로 돌아가면서 그 지역이 대부분 이슬람화 되어 있는 모습에 매우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이유를 ‘다음 세대’에 대한 ‘선교적인 관점의 부족’이라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 역시 교회 안에서 우리끼리 만의 의사소통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세상과 더불어서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또한 그들의 고민과 어려움을 듣지 못하고 자기 이야기만을 하고 있습니다. 다음 세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과거 종교개혁 시대나 예수님 시대의 이야기만 할 뿐, 예수님이 당시의 딱딱하게 굳어진 바리새적인 사고에 젖어 있는 이들과 대적하시면서 복음을 분명하게 깨닫도록 대화를 하셨고, 종교 개혁자들 역시 사회적인 고민 속에서 어떻게 그들과 대화를 하고 선한 영향력을 미칠 것인가를 고민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우리끼리만’ 은혜를 나누고 세상과 담을 쌓고 있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세상과 대화하는 모습, 세상을 향해서 다가가는 모습이 매우 부족했습니다. 아니, 거의 전멸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세상으로부터 외면을 당할 수밖에 없었고 세상과 의사소통이 없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최근에 ‘선교적 교회론’이 등장하면서 ‘마을 목회’라는 개념이 시작되었습니다. 마을목회는 지역사회와 의사소통을 하는 ‘열린 구조의 교회’로 변환을 이야기합니다. 심지어 그동안 교회는 외부인들에게는 ‘닫힌 구조’와 ‘건물 양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교회당의 모습조차도 세상 사람들의 출입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모습으로 변화되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이러한 ‘선교적 교회’의 모델을 좇아서 ‘마을목회’를 향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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