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과거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서 날마다 자신과 교회 그리고 자신의 삶의 자리를 ‘개혁’해야 합니다. 이것이 종교 개혁자들이 ‘개혁자로서의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신앙생활을 종교생활로만 규정하지 않고, ‘삶의 체계로서의 기독교’를 말했습니다. 종교생활은 교회당을 중심으로 ‘종교행사에 참여함’ 그 자체로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른 신앙생활은 교회당 중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내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코람 데오)를 말하면서, 두렵고 떨림 속에서 삶의 자리를 ‘소명의 자리’로 고백하면서 살아내었습니다.
또한 교회의 개혁은 지금까지 해왔던 관습과 전통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틀로 변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제도이든지 시간이 지나면 굳어지고 딱딱해지고 그것이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의 선배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 시대에 맞는 모습으로 교회를 표현했을 뿐이었습니다. 그 시대의 문화와 전통을 따른 표현이 예배순서와 교회의 조직으로 표현되었습니다. 특히나 스코틀랜드의 강력한 문화적 전통으로 인해서 ‘장로교’가 생겼습니다. 장로교의 기본은 ‘노회’를 기본으로 하고, 성도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헌신을 기본으로 하였습니다. 모두가 ‘고백주의 시대’라고 해서 자신이 믿고 고백하는 신조 곧 신앙고백이 무엇인가를 따라서 교파를 정하곤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어떤 시대보다도 사회를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함께 하는 것도 어려운 ‘개인주의’적 성향과 ‘이기주의적 성향’, 그리고 ‘물질 최우선 주의’의 모습이 복합적으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영향은 교회에도 여전합니다.
교회는 앞으로 더욱 힘들 것 같습니다. 최근에 종교 사회학에서 ‘종교 쇼핑’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코로나 시기에 이곳저곳 유튜브로 목사들의 설교를 들을 수 있게 되어서, 하나님이 우리 공동체를 위해서 주신 말씀으로 듣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생각에 부합한 목사의 설교’를 듣는 ‘편향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기까지 합니다.
더 이상 모여서 무엇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모임을 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과 상처를 받는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이런 모습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교회는 더 이상 사랑의 공동체가 아니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알아버렸습니다. 아니,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자신을 희생하고 포기하는 교회가 아니었다.’는 것이 드러난 것일 뿐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은 당시의 시대정신을 뒤따르기 보다는 변혁하고 개혁하여 새로운 교회상을 만들었습니다. 지금 이러한 시대에서 우리는 시대에 맞는 교회상을 만들어내야 할 과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과거’에 머물러 있어서는 아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