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사역을 하다보면 예기치 못한 일들을 만날 때가 많습니다. 사실, 세상살이에서는 더더욱 그렇지요. 교회와 사택만을 오가는 저에게 손님이 찾아왔었습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특별한 접촉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교회 일처리하기 위해서 신협에 들른 것 말고는 말입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이 손님이 남들이 말하는 것처럼 결코 가볍게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어떤 분은 약에 취해서 비몽사몽 하면서 지냈다고도 하시지만, 저는 약을 먹어도 아무런 차도가 없이 오롯이 아픔을 견뎌야 했습니다. 오래 전에 뎅기열로 고생을 해보아서 그때와 비교하면 1/3 정도이지만, 그래도 아픈 건 힘들었습니다. 내가 경험해서 그렇다 더라고 말하기는 쉽지만, 실제로 사람마다 겪게 되는 고통의 수치가 다르고 그 의미가 다르게 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쉽게 어떤 일에 대해서 “이렇다더라”라고 평가하는 것을 더욱 조심해야 함을 생각해보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강제적인 쉼을 당하면서 고통 가운데서 주님을 의지하고 찾고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새삼 느껴보았습니다. 하루 종일 통증과 고열과 두통이 있을 때 주님을 찾고 기도하고 찬송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냥 지금의 아픔 속에서 빨리 벗어나고픈 마음만 간절했습니다. 그러다가 조금 몸이 나아지니 내가 해야 할 사역과 주님을 찾고 있었습니다. 예전에 많이 아팠을 때의 경험도 있었지만, 여전히 고통이라는 것을 감내하는 것은 힘듭니다. 그래서 인생의 고통 속에 있는 이들의 삶은 얼마나 무겁고 힘들까를 다시금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최근에 수재로 인해서 어려운 이들을 찾아간 정치인들이 별 생각 없이 내뱉었던 말들로 인해서 구설수에 오르고 큰 이슈가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평소에 갖고 있었던 삶의 태도가 그대로 드러나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실수로 그랬다.” , “어쩌다보니 그랬다.”, “술 먹고 그래서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등의 말로 지금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려고만 합니다. 사람은 말과 행동을 구별해서 해야 한니다. 평소에는 별 문제가 되지 않기도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큰 문제가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됨됨이는 그러한 상황에서 여실히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순간, 급박한 순간, 부지불식의 순간에 자신의 본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지요.
결국 믿음이라는 것이 그러합니다. 평소에는 구원의 확신을 가졌다고 말하고 믿음을 이야기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혹은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오는 말과 행동이 전혀 믿음의 모습이 아닌 경우를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깊이 있는 인격적인 경험이 없이, 사상과 사고의 전환이 없이 종교생활에만 심취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