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부터 은행과 세무서, 등기소 등을 다니면서 교회명칭 변경과 대표자 변경을 신청했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전자정부가 되어서 굉장히 편리하고 빨리 되는 것이라는 방송만 접했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부분에서는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아날로그에 익숙해 있었던 삶이라서 모든 것을 새로이 배워야 하는 조금은 스트레스 받는 일이었습니다. 막상 등기소에서 하는 절차를 하다가 몇 번이고 오가는 수고를 해야만 했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2022년에 살고 있는데, 등기소 행정은 1970~80년대였습니다.
그래도 저는 아버지께서 하시던 일을 도와서 군청과 등기소 등을 오가면서 잡일로 대장들을 열람해본 경험이 있어서 그때를 생각하면서 하다보니 조금은 익숙해졌습니다. 공무원들은 자신이 행하는 일반적인 일이라서 익숙하기에 말도 빠르고 어떤 때는 말을 못 알아들었냐는 표정을 짓곤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런 모습이 모두에게도 같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익숙한 언어와 생활이지만, 누군가에는 전혀 들어보지도 못한 ‘낯설움’ 그 자체일 수 있다는 생각 말입니다.
일을 하면서 ‘공동의회록’을 제출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해서 ‘총회록’을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총회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공동의회’라는 말을 사용한다고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교회생활을 전혀 해보지 않은 분들에게 우리의 용어나 삶의 모습이 매우 이질적으로 느껴지고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객관적으로 세상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와 삶을 살아내는 것이 ‘선교적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교적 삶이란 세상과 타협해서 세상의 모습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믿는 믿음의 가치와 지향하는 교회 공동체에 대해서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성육신의 언어와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선교’라고 하면 다른 나라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것으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선교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등장했는데 그것은 ‘타문화권 선교’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교회문화는 익숙하지만, 교회 밖에 있는 이들에게는 낯선 문화인 것이지요. 그래서 결국 우리 모두가 ‘선교적 삶’을 살아냄으로써, 우리가 믿는 믿음의 가치와 기독교적인 삶을 세상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으로 드러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