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에 저를 아끼고 기도해주시던 목사님이신 외당숙께서 주님의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은퇴하시고서도 중국과 대만과 동남아시아 등을 순회하면서 활발하게 선교사역을 감당하시다 코로나 직전에 허리를 다치셨습니다. 이런 두 가지 이유로 주님의 사역을 활발히 감당하지 못해서 안타까움이 많으셨습니다. 제가 브라질에서 돌아온 이후에 한번 뵙기는 했지만,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외삼촌과 통화만 했을 뿐 찾아뵙지 못해서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컸습니다. 약 한달 전에 몸이 편찮으셔서 병원에 입원하셨는데 찾아뵙지 못해서 더욱 죄송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동생 집(대전)에 잠시 내려와 계시던 상황이어서 어머니와 함께 외숙모님과 찾아뵈었습니다.
얼마 전부터 많이 기력이 쇠하여지셨고 가끔은 혼수상태에 빠지셨습니다.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도 헛소리를 하시는데도 복음을 외국인들에게 전하시고 찬송을 하셨습니다. 잠시 정신을 잃은 상황이면 가족을 찾거나 때로는 깊은 상처를 내뱉는 것이 일반적인데, 외삼촌께서는 복음을 전하고 찬송하시는 참 목사이셨습니다.
장례로 인해서 제 기억으로는 30여년 만에 뵙는 외삼촌들, 그리고 외사촌 동생들… 참 세월이 빨리도 지나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나 저는 신학을 공부하고 가족들 보다는 교회사역을 우선시함으로 함께 하지 못했던 시간들이 많았습니다. 게다가 외국생활을 오래하다 돌아보니 벌써 많은 시간이 흘러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처음에는 얼굴을 보고서 긴가민가했는데, 한참을 보다보니 조금씩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외갓집 식구들이 모여서 도란도란 얘기하시는 모습도 좋았고, 형제간이라고는 외삼촌을 6.25 전쟁에서 행방불명으로 잃으시고 어머니와 이모가 밤새도록 도란도란 이야기하시는 모습에 끼어 있다보니 새벽 2시를 훌쩍 넘기기도 했습니다. 참 세월이 빨리 지나갔고 정말 오랜만에 만났지만 ‘가족과 친족이란 이런 것인가 봅니다.’
가족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듣다보니 외갓집 모든 집안이 신앙생활을 했던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뿐만 아니라 온 가족의 신앙이 초대 선교사님들로부터 배웠던 개혁주의적 신앙의 터 위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이렇게 저는 저의 신앙의 뿌리와 그 터전을 다시금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현대사회는 가족과 친족이라는 의미가 점점 약해졌습니다. 길에서 만나면 사촌조차도 알아보지 못할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가족과 일가친척이라는 말이 이제는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비록 헤어짐의 슬픔이 있지만, 이 기회를 통해서 모두가 한 가족과 한 신앙의 뿌리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함께 하는 시간이 참 은혜로웠습니다.
우리 주안애 공동체 가족들 모두가 믿음으로 아름답게 세워져가는 믿음의 가문이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