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에 대한 대응으로 인해 교회의 위상이 매우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우리와 다르게 미국의 경우는 코로나 19에 대한 교회의 대응이 사람들에게 본이 되고 위로가 되었다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우리나라는 교회의 공공적인 성격이 매우 약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사회는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그 범위가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이들에게 만으로 국한되는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사회는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개인을 지켜주어야 한다는 의식을 갖고 있어 우리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신앙’과 ‘교회’에 대한 이해에서도 차이가 납니다. 우리사회는 오랫동안 종교를 갖는 이유는 ‘기복주의’에 있습니다. 그 기복주의는 곧 ‘자기 자신을 위한 삶’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을 위한 섬김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실, 기독교는 ‘나를 위한 종교’가 아니라, ‘타인을 위한 종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어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섬기신 것을 기초로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우리’에게 관심을 갖기 보다는 ‘타인’에게 관심을 갖고 사회적인 섬김을 기본으로 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이러한 타인에 대한 관심과 섬김을 기본으로 하는 공공성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모습이 코로나 19 시대에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최근에 세계적으로 젊은 세대를 ‘비종교적 세대’라고 지칭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라 기독교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나라들에서 조차도 젊은 세대는 점점 신앙에 대한 관심이 없습니다. 이러한 ‘탈종교화 현상’이 더욱 가속화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립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코로나 19로 인해서 교회가 대사회적인 공공의 섬김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교회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 한국교회는 코로나 19에 대한 대응을 잘 못함으로써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더 쌓게 되었습니다. 또한 일부 목회자들의 일탈과 정치적인 집회, 경제적인 이권을 위한 모습과 세습 등으로 인해서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욱 깊어졌습니다. 또한 한국교회는 주변에 대한 섬김 보다는 높은 담을 쌓고 있어서 오히려 이웃들과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모습으로 인해서 기독교는 사회와 갈등하는 종교이며 퇴출되어야 하는 종교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쯤 해서 우리는 교회의 공공성을 다시금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교회의 공공성은 주님의 섬김을 따라서 이익이나 전도를 위한 목적을 차치해놓고서 무조건적으로 자기희생적인 섬김의 모습을 갖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의 열매를 바라보지 않고 먼 미래를 바라보고 진정한 기독교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