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25일 새벽에 전격적으로 단행된 북한의 침공으로 한국전쟁이 발발했습니다. 벌써 73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친미와 친소로 나뉘어지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다가 결국은 남북한으로 분리되어 전쟁에 이르기까지 하였습니다.

6.25 한국 전쟁에 대한 이해에 대해서 국제적 관계 속에서 이해해야 되는데 우리는 너무나 우리끼리의 갈등의 양상이 너무나도 심한 측면이 있습니다. 한국전쟁의 세계사적 맥락은 해양으로 진출하려고 하는 세력과 그 세력을 막고자 하는 세력의 충돌이 우리 한반도에서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해양으로 진출하려는 세력은 북한의 김일성 정권을 세우고 그들을 앞세워서 진격한 것이었다는 것이지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김일성 정권이 어쩔 수 없어서 그랬다고 변호하는 것 역시 아닙니다. 김성주는 항일 투사였던 김일성 장군(옛날 분들은 배운 적이 있어서 아실 것입니다.)의 이름을 따서 김일성이라고 이름을 바꿔서 항일 투쟁을 했으며 그것이 민족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백성들을 속였습니다.

한 민족이고 한 가족이면서도 이념으로 인한 다툼이 결국은 파국을 맞이하는 아픔을 경험하였습니다. 가족끼리도 서로 다른 이념으로 인해서 북한과 남한으로 나뉘어서 총을 들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나라의 오랜 역사의 영향으로 생긴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우리나라는 왕조가 바뀔 때마다 ‘국호’를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이전의 왕조와 치적을 지우고자 했습니다. 자신들의 정통성을 그렇게 찾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서양사회는 왕조가 바뀌어도 국호를 그대로 사용합니다. 그리고 이전의 공과(功過)를 그대로 인정하고 그 역사 위에 새롭게 세워갑니다.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누가 대통령이나 여당이 되었느냐에 따라서 이전 정부의 업적을 가리고 지우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연출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교회와 성도의 역할은 ‘서로에 대한 인정’이 필요합니다. 좀 다른 생각에 있다고 무조건 틀렸다고 말하고 부정하기 보다는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과 역사를 인정하고 좀 더 그 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부터 “틀렸어”라는 말 보다는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라고 하면서 의견을 조율하는 성숙한 모습이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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