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역사는 ‘선교의 역사’였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선교사들의 선교사역을 통해서 복음을 받아들였고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일반적으로 선교사역이라고 하면 그 중심을 ‘교회 개척사역’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초기만 하더라도 교회사역과 함께 사회봉사가 함께 있었습니다. 그 사회봉사의 일원이 교육과 고아원, 그리고 병원을 설립하는 일이었습니다. 또한 교회개척 사역 가운데 ‘교육’의 차원이 있었는데, 수요예배의 뿌리가 그것입니다. 과거에는 수요집회라고 해서 쇄국정책으로 세상을 전혀 알지 못했던 이들에게 세상과 과학 등 서양 학문을 가르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선교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해외선교라는 이해를 갖고 있는데, 최근에는 ‘타문화권 선교’라는 개념으로 바뀌었습니다. 타문화권이라는 말은 우리사회 안에 있는 다른 문화 곧 외국인이나 재이민 오신 분들, 그리고 최근에는 다음 세대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서양사회에서 선교의 출발점은 15세기 이후에 내지 선교(Innermission, 이너미션)라는 개념이었습니다. 내지 선교라는 개념은 서양사회에서 개척항해의 시대에 개척자들과 이민자들이 식민지 건설을 위해서 이주하였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을 돌보고 양육해야 할 목회자가 필요했는데, 이들을 가르켜 ‘선교사’라고 하였습니다. 이후에 그곳에 도착해서 보니 ‘원주민’이 있었지요. 당시에 선교사라 불렸던 이민 목회자들이 함께 사역을 하다가, 그들만을 위한 전문적인 선교사가 필요해서 본국에서 원주민 선교사 파송을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선교와 사회봉사’라는 개념이 구체적으로 나뉘지 않았습니다. 이 두 가지가 함께 사용되었습니다. 초대 교회에서 주로 사용되었던 단어는 ‘디아코니아’(Diakonia)인데, 이 말은 ‘봉사’ 혹은 ‘집사’라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초대 교회에서는 믿지 않는 이들을 위한 봉사 역시 ‘선교’라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우리가 감당하고 이끌어가는 국내 선교는 사회봉사적 성격이 강합니다. 사회봉사적 성격을 띄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 자체가 사람들의 생각을 변화시키고 교회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선교에서는 ‘성육신적 선교’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는데요. 즉, 그들의 삶의 현장으로 나가서 그들과 함께 하는 선교라는 개념입니다. 오늘 우리 국내선교 역시 그러한 개념 속에서 ‘성육신적 선교’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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