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간은 ‘설 연휴’였습니다. 모두들 가족들과의 만남을 행복하게 가졌으리라고 믿습니다. 저희는 지난 주간에 깜짝 선물을 받았습니다. 목요일에 어머니와 형제들이 잠시 사택에 모여서 함께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주일에 예배를 마치고 저녁 늦은 시간에 갑자기 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나서 무슨 일인가? 싶었습니다. 그랬더니 둘째 아들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큰 아들까지 집을 들어서는 것이었습니다. 올해는 저희가 브라질에 가지 않고, 4~5월경에 “너희가 한국을 방문해라”고 했기에 그때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들이 들이닥치니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그리고 너무 반갑고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으니 제가 오라고 하기 전부터 ‘깜짝 방문’을 준비하였다는 것입니다. 가끔 통화하면서 스포일러(미리 알려주어 재미를 떨어뜨림)를 본의 아니게 했는데도 저희가 전혀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브라질은 한창 더운 여름인데, 이 추운 겨울에 공항에 도착해서 버스와 택시를 타고서 집에 도착했습니다. 큰 아이 예찬이는 저희가 부임한 이후로 처음으로 왔습니다. 더군다나 한국에 나온 지가 벌서 5년 전이니 여러 가지로 낯설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언어가 통하고 중학교 2학년까지 대전에서 살았던 터이고, 작은 아이 예솔이는 저희가 부임할 때 한국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하던 중에 여러 번 방문했으니 그리 어렵지 않게 집을 찾았습니다. 한국에서의 생활보다도 브라질에서의 생활이 더 긴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람임을 새삼 느끼는 모양입니다.

가족이란 멀리 있으면 애틋합니다. 그래서 사무치게 가족을 그리워하며 그들의 삶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아이들을 떼어놓고 와서 보니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은 느끼게 됩니다. 저희도 이런데, 어머니는 어땠을까?를 이제야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어머니께서 “나는 너희가 오니까 너무 좋은데, 너희는 아이들을 떼어놓고 와서 어떡하니?”라고 하셨던 말씀의 의미가 조금은 깨달아집니다. 더군다나 예전에는 지금처럼 마음 놓고 영상통화를 하지도 못했던 시기였기에 더욱 애달팠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아버지를 여러 해 동안 뵙지 못한 상태에서 소천하셨는데, 얼마나 아들을 보고 싶으셨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리도 거리이거니와 오가는 경비도 만만치 않았고, 가장 큰 이유는 목회 현장을 비우기 어려웠기에 부모님을 찾아뵙는 것을 잘 하지 못했었습니다.

평소에 저는 ‘주의 종의 길을 가기에 가족을 떠났다.’는 생각을 하고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자식을 낳아서 길러보고 떨어져서 생활을 해보니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더 크게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가족애가 점점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들은 더 큰 애탐이 있습니다. 이번 한 주간 동안은 ‘가족들의 안부’를 묻고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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