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말씀드렸다시피 두 아들이 한국에 방문했습니다. 아내와 저만 살고 있는 집에 두 아들이 오니 활기가 넘칩니다. 부부 모두가 두 아들을 바라보며 그저 행복해 합니다. 이제 브라질로 돌아가면 언제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더 많은 것을 해주고 싶어 하는 제 모습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육신적으로는 조금은 피곤할 만도 한데, 두 아들과 함께 하는 것만으로 피곤해 하지 않고 새벽 시간까지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사실, 새벽기도를 인도해야 해서 조금은 일찍 자야 하지만 말입니다.
지난 주간에 신학대학 재학 중에 가르쳤던 제자를 잠시 만났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가르쳤던 제자인데 몇 십 년이 흐른 뒤에 저를 찾아서 만났습니다. 지금은 어엿한 중년이 되어가고 있어서 같이 나이를 먹어가고 있었습니다. 제자의 아버지는 유명한 프로야구 선수 생활을 마치고 프로팀에서 코치 생활을 하던 중에 갑자기 소천 하셨습니다. 점심때까지도 통화를 했는데, 그것이 마지막이었다고 합니다. 중학교 2학년 때인데 말이지요. 그래서 그때부터 무척 힘들고 방황하던 시간이 길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를 원망하면서 말이지요. 그런데 지금 나이를 먹고 보니 40대 초반이었던 어머니가 하나 밖에 없는 자신을 키우기 위해서 갱년기도 모르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아버지가 자신을 놓고 떠난 것이 그렇게 아프고 하나님을 원망했다고 합니다. 엄마의 슬픔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자신의 아픔만 투정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제는 아버지의 나이가 되다보니, 엄마와 자신을 놓고 먼저 떠나가는 아버지의 모습이 안타까워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또한 젊은 나이에 홀로되어 자신을 묵묵히 키워준 엄마가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비록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알기에 지금은 위로를 받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다시금 ‘자녀의 힘’을 생각해봅니다. 부모는 언제든지 자녀를 바라봅니다. 자녀를 바라보면서 행복하고, 자녀를 바라보고 헌신하면서 위로를 받고 활력을 얻습니다. 자녀는 결국 부모가 살아가는 힘의 원동력입니다. 자녀가 기뻐하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그냥 기쁩니다. 또한 자녀가 슬픈 일이 있거나 얼굴이 어두우면 자녀들을 살핍니다. 가끔은 부모가 자녀들의 기분을 맞추어 주기 위해서 어린양을 피우기도 하지요. 그래서 부모는 언제든지 ‘자녀 바라기’인 것 같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도 항상 당신의 자녀가 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우리로 인하여 기뻐하시고 우리로 인하여 위로를 받으십니다. 언제든지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음 안에서 회복되어 기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응원하고 계십니다. 마치 부모가 우리의 서포터즈인 것처럼,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서포터즈가 되십니다. 또한 우리 주님은 우리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기도 하십니다. 이번 한 주간도 그 주님을 의지하고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