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운동 105주년입니다. 1919년 일제의 강압적인 식민지 정책에 항거하여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일어난 국민 저항의 불길이었습니다. 삼일운동은 민족의 독립운동으로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일어났습니다. 태극기를 들고서 시장통에서 일제에 항거하여 나라의 독립을 부르짖었습니다. 당시에 민족의식이 싹트는데 교회가 일조를 했습니다. 교회의 영향권에 있는 이들이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갖게 되었고, 식민지로 인한 인권의 침해가 얼마나 비인간적이며 비신앙적인가를 알았습니다. 삼일운동의 지도자들 가운데 유독 그리스도인들이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유관순 열사도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기독교는 민족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며 탈출구를 모색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민족과 함께 하는 종교였습니다. 그래서 오늘날도 교회는 민족이나 지역의 아픔을 공감하며 그들과 함께 숨 쉬는 모습이어야 합니다.

최근에 T.V.에서 ‘출산이 애국입니다.’라는 문구를 보았습니다.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에는 자녀를 출산하는 일은 결혼하면 당연히 일어나는 자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나 산업화 사회가 되면서부터 자녀를 출산하는 것을 돈과 연관 짓게 되었습니다.

어제 뉴스에 한국의 자녀출산율이 0.65명으로 세계 최하위로 추락했다는 소식이 연일 보도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소멸 국가’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출산율을 높여야 한다는 당위성으로 인해 ‘출산이 애국’이라는 표어까지 등장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리 이런 강조를 하더라도 젊은 세대가 전혀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자녀 출산으로 인한 양육비 부담과 자신의 삶을 희생한다는 의식이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사실, ‘사고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자꾸만 우리사회는 나라의 소멸이 청년 세대의 책임인 것인 양 부각되고 있습니다. 나라에서 수많은 정책을 펼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좀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의식전환을 위한 수고가 더 많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왜냐하면, 자녀를 낳아서 양육하는 것을 국가부터서 ‘돈’과 연결시켜서만 정책을 펼치다보니 자녀와 돈을 연관지어서 생각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강조해야 할 것은 ‘가족이 있음으로 행복함’과 ‘가족으로 인한 풍성함을 누리는 삶’이어야 합니다. 가족을 이루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를 강조해야 합니다. 자녀를 양육함으로 인해서 치루어야 할 고통과 비용이라는 측면을 강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오히려 자녀를 양육하고 함께 함으로 인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산술적으로 계산할 수 없이 큽니다. 그래서 애국이라는 측면이나 소멸론의 측면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자연질서이며 그것 자체가 복됨이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의 가장 기본은 ‘가족’입니다. 그 가족은 천국의 모습을 가장 잘 머금고 있는 곳입니다. 오히려 가족의 공동체성과 행복을 회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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