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가 찾아왔지만 결코 봄기운을 거스르지 못합니다. 남녘에서부터 봄꽃들이 아름다움의 향연이 시작될 것입니다. 과거의 우리나라는 산들이 벌거숭이였지만, 이제는 밀림처럼 빽빽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과거에는 유럽의 아름다운 꽃들로 장식된 도시들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했지만, 이제는 세계 어떤 도시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꽃들로 장식된 봄철을 우리는 만끽하게 되었습니다.
봄에는 우리 주안애 식구들이 구역이나 기관들에서 함께 ‘봄나들이’를 많이 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구역을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 우려가 있었지만 기우에 불과했던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구역을 통해서 “나눔과 위로가 되고 은혜가 넘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제가 매주일 구역의 나눔을 살핍니다. 제가 무엇인가 도와드려야 하는 것이 있지 않나 하는 마음으로 말이지요. 그런데 우리 구역장님들께서 너무나 잘 하고 계셔서 제가 끼어들 자리가 전혀 없었습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구역 나눔의 현장입니다. 또한 식당의 봉사에서도 남자 분들이 앞치마를 두르고서 설거지를 거드는 모습이 보기에도 참 좋았습니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섬기려고 하니 가능한 것입니다. 누구 하나 뒤로 빠지지 않고 서로가 섬기려고 하고 자신의 삶을 나누는 모습에서 저는 희망을 발견합니다.
초대 교회 공동체는 지금과 같은 ‘가족 공동체’였습니다. 이러한 공동체를 ‘가정 교회’ 혹은 ‘셀 교회’라고도 합니다. 교회는 두 개의 든든한 날개가 있어야 합니다. 그 첫째는 예배 공동체로 살아 있는 능력이 역사하며 말씀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소그룹으로 초대 교회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서로의 삶을 나누고 위로하고 함께 섬겨주는 모습입니다.
교회는 불교와 같은 사찰(템플)이 아닙니다. 교회는 외적으로 주어진 교회당이 아니라, 믿음의 사람들이 함께 하는 ‘공동체’입니다. 교회라는 헬라어가 ‘에클레시아’인데, 이 말은 ‘밖으로 부름받은 공동체’라는 뜻입니다. 원래 이 말이 사용되었던 곳은 이탈리아의 아테네에서 사용되었는데, 일상의 삶을 잠시 멈추고 높은 언덕에 모여서 중요한 의제를 논의하고 정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백성의 모임을 카할을 우리말로는 ‘총회’로 번역했는데, 헬라어로는 ‘에클레시아’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래서 구약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모인 모임, 그리고 애굽의 삶에서 해방되어 새로운 삶을 위해 나온 공동체라는 개념이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세상의 삶의 방식을 좇아서 모인 곳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부름받아 하나님을 예배하고 주님의 말씀을 좇아서 살아가는 공동체’입니다. 공동체는 함께 먹고 희노애락을 함께 합니다. 따뜻한 봄철에 구역들이 함께 함을 통해서 더욱 끈끈한 믿음의 가족 공동체로 설 수 있기를 위해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