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창세기 말씀을 깊이 있게 읽으면서 제자훈련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어떤 반은 아직 요한복음을, 어떤 반은 로마서를, 어떤 반은 창세기를 들어가는 등 차이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깊이 있게 배우는 형제자매들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을 알아가고자 하는 깊은 열망이 있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그 배움 속에서 깨닫고 말씀을 붙들고 살아내고자 하는 믿음의 노력들을 또한 봅니다.

제가 항상 제자훈련에서 성경을 공부하기에 앞서서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이 기록되었을 때 그 대상자인 1차 독자에 대한 이야기와 기록된 당시의 배경과 문화에 대한 것입니다. 그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져야만 2차 독자인 우리는 내가 알고 있는 생각과 우리의 사회, 문화 등으로 본의 아니게 왜곡하는 현상을 막을 수 있습니다.

종종 유럽 여행이나 회화전 등에서 낯선 환경을 보곤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림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때 그려진 회화들에서는 예수님 시대의 옷이나 복장, 무기가 아닌 중세시대의 군인과 군주의 모습이 그대로 등장합니다. 그래서 종종 그림을 보면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화가들의 생각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과거로 돌아가서 이해하기 보다는 오늘 살아가는 현대의 맥락에서 이해하고자 한 측면이 강했습니다. 이러한 배경을 놓고서 그림을 살펴보면 당시에 화가에 부탁한 군주나 지주의 얼굴을 은혜의 자리에서 가장 돋보이게 그려놓은 경우가 보입니다. 또한 그 당시의 문화와 교회생활 속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어떻게 이해했는지가 보이기도 합니다. 반면에,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너무 왜곡하였습니다. 그림에 중세시대의 옷을 입힘으로써 예수님 시대의 상황을 잘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 그림만으로 주님의 십자가 사건을 이해하는 사람들에게는 심각한 왜곡에 빠지게 합니다.

우리 한국교회도 이런 심각한 왜곡 혹은 굴절현상이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선교사들을 통해서 전달되었는데, 주도적인 역할은 미국의 선교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수고와 헌신, 그리고 그들의 영혼을 향한 사랑은 그 무엇으로도 잊지 못할 감사입니다. 반면에, 우리는 중동지방에서의 예수님 시대의 문화와 배경 속에서의 메시지에 대한 이해, 그리고 유럽에서 기독교적 지위와 그에 따른 신학적 배경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부족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미국을 통해서 건너온 복음 곧 미국의 옷을 입은 복음이 전부인 것으로 이해하는 왜곡현상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왜곡을 벗어나기 위해서 성경의 배경과 저자의 의도를 깊이 파악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왜곡 없이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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