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화요일에 사역을 마치고 저녁에 동산에 홀로 올라가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무도 없는 밤에 제 귀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와 야행성 동물의 소리만 들렸습니다. 가끔 바람소리도 들렸구요. 그때 영적인 큰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삶의 무게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 살아가려고 합니다. 우리는 ‘들으려고 하는데’만 집중합니다. 그런데 막상 들으려 하면 세상의 수많은 소리에 가로막히고 나의 걱정과 두려움 등으로 인해 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종종 ‘한적한 곳으로 물러 나셔서 아버지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신 것’이었습니다. 핸드폰 소리도 결코 방해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제 핸드폰은 그곳에서 터지지 않거든요. 그래서 오로지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그 가운데서 영적인 깨달음에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들으려 하기 보다는 세상의 소리와 걱정 염려를 차단할 때 들리는 것이 하나님의 음성임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그리고 아침이 되어 홀로 기도하고, 편안하게 큰 소나무에 해먹을 걸어놓고 누웠습니다. 그러다가 또 하나의 깨달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커다란 소나무가 다섯 그루가 있는데, 한 가운데는 가지가 없었습니다. 있더라도 아주 조금 있고, 서로가 부딪치지 않게 비켜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소나무가 스스로 생존하기 위한 모습이겠지만, 저에게는 그것이 서로에 대한 ‘배려의 모습’으로 비쳐졌습니다. 내가 편안하자고 먼저 팔을 뻗어서 자리를 차지하면 다른 이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팔을 뻗지 않으면 서로가 함께 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믿음의 성도들이 자신을 주장하기보다 다른 이를 배려하면 서로가 상처받지 않고 함께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눈을 들어 먼 산을 둘러보았습니다. 바람에 나뭇잎들이 흔들렸습니다. 그때 저에게 깊은 영적 깨달음은 하나님을 향해서 나무들이 마치 손을 흔들고 노래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전에는 그냥 바람에 가지가 흔들리는 것일 뿐이라고 여기고 말았습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지나칠 때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홀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을 때 ‘영적인 깨달음’이 깊어졌습니다.
우리 모두가 세상으로부터 내상을 깊이 입고 지내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기가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그러다보니 교회 공동체로 모였을 때, 봉사할 때 이런 저런 연약하고 모난 모습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기독교의 영성은 ‘나를 되돌아봄’과 ‘묵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조용한 시간 속에서 홀로 주님과 맞닥뜨리는 시간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세상의 너무 많은 소리에 세미하게 들리는 주님의 음성을 대부분 놓치고 있습니다. 조용한 묵상의 시간을 통해 세밀하게 자연만물 속에서 말씀하시고 깨닫게 하심을 경험해 보기를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