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은 무척 무더운데다가 가물었습니다. 금요일에 비가 오는데 정말 ‘단비’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브라질에서도 가물다가 비가 오면 ‘슈바 도시’(Chuva doce, 단물)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비록 언어와 국적이 달라도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비슷한 모양입니다. 이런 표현은 단순히 환경에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심리나 경제적 상황 혹은 영적인 상황에서도 비유적으로 자주 사용됩니다.
우리 사회의 모습이 바로 ‘단비’가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문화적으로 급속도로 변해가는 환경에서 우리 모두가 인간성과 예전의 모습에 대한 매우 큰 갈증을 느낍니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한 결 같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요즘은 왜 그런지 모르겠다.” “요즘 사람들은 말 붙이기가 어렵고 무섭다.”는 등의 표현들을 어렵지 않게 듣곤 합니다. 사람들과 어떤 대화를 할라치면 대화가 잘 되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냉담으로 다가오고 어떤 때는 이유 없이 화를 내는 경우도 그리 어렵지 않게 만나는 상황이 종종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모두가 예전의 정이 넘치는 사회에 대한 그리움이 있습니다. 특히 추석명절을 지나면서 예전의 추억을 떠올리면서 가족이나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었을 것입니다.
이제는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사회가 이제는 가족들과 친지 혹은 일가가 함께 사는 농경을 중심으로 하는 씨족사회를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산업화를 거쳐서 정보화 사회가 되었습니다. 무엇을 함께 힘을 합쳐서 사는 사회(농경문화)가 아니라, 개인 단말기를 통해서 정보를 주고받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또한 어떤 일을 결정할 때 어른들에게 자문을 구하기 보다는 정보를 찾아서 자신 스스로 결정하는 사회 문화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추석과 같은 명절에는 예전의 정서가 우리로 하여금 ‘향수’를 갖게 합니다. 이제 그것은 과거의 ‘향수(鄕愁)’가 돌아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냥 기억으로만 남을 뿐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아직까지 서로의 삶에 대해서 깊이 있게 나누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개인적인 문화가 아니라 공동체로 예배하고, 구역과 주일학교, 전도회 등에서 모임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함께 식사와 사역을 하면서 함께 어우러짐을 여전히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좋은 측면이 있지만, 함께 하다 보니 다른 사람의 부족한 점도 보이는 등 이런 저런 약점들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약점이 조금 보인다고 해서 그 사회나 공동체가 흔들려서는 아니 됩니다. 오히려 약점이나 부족한 점 보다도 더 좋은 것을 보고서 만들어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세상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인생의 갈증’이 교회를 통해서 ‘단비’로 경험되기를 바랍니다. 주님과 교회를 만남을 통해 우리 인생의 갈증이 채워지는 풍성한 단비로 채워져 가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