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지도 않게 빠른 추위가 찾아왔습니다. 선선함을 느끼기도 전에 급작스러운 추위가 갑작스레 당황함을 가져다준 지난 주간이었습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에어컨을 틀어야 했는데, 이제는 온열기를 틀게 되었습니다. 옷차림들도 많이들 바뀌었는데, 아직도 갈팡질팡 하고 있기도 하는 듯합니다. 아직 여름을 보내기 싫어하는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은 여전히 반팔차람이지만, 추위에 약한 분들은 벌써부터 얇은 패딩을 입고 다닙니다. 두꺼운 패딩을 입고 가는 분이 있길래 살펴보았더니 외국인이더군요. 아마도 따뜻한 나라에서 왔기에 우리나라의 가을의 추위가 우리보다 더욱 춥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사실 한 나라에서 적응해서 산다는 것은 언어만이 아니라, 문화와 기후 등 참 많은 것들이 필요합니다. 심지어 입는 옷도 그렇구요.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있어서 아름답기는 하지만 그에 걸맞도록 옷을 입어야 하는 등 생활에 필요한 것들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도 우리나라 가을은 참 예쁩니다. 세계의 많은 나라들 중에 가을에 전국의 산야를 아름답게 물들이는 단풍이 있는 나라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봄도 아름답지만 가을의 아름다움도 무척 다채롭게 느껴집니다. 점점 이렇게 아름다운 계절인 가을이 기후 변화로 인해 짧아지는 것이 무척 아쉽습니다. 다음 세대들은 이런 가을의 정취를 마음껏 누릴 수 있기나 할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쳐가기도 하네요.

오늘은 우리 모든 주안애 가족들이 동산에서 함께 하는 아름다운 은혜의 시간입니다. 우리의 삶이 도시에서 이루어지기에 대체적으로 자연을 둘러보는 마음의 여유를 찾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아름다운 동산에서 잠시의 여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원로 목사님과 교우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이런 은혜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과거에 수고하셨던 많은 분들이 과거의 일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오늘의 은혜를 함께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 공동체는 ‘함께 하는 모임’입니다. 한자어로 교회(敎會) 곧 가르치는 모임 혹은 가르침을 받는 모임이라는 뜻을 사용했지만, 원래의 뜻은 ‘부름 받아 함께 교제하는 공동체’라는 에클레시아와 코이노니아입니다. 즉, 교회는 예배만 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삶을 나누는 새로운 가족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도시화로 인해서 예배만을 위한 모임으로 전락된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주안애 교회는 지난 여름 사역과 오늘의 야외예배를 통해서 주님께서 세우고자 하셨던 교회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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