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개신교인에 대한 시각이 점점 나빠지고 있습니다. 최근에 ‘보수와 진보’라는 정치적인 역학 구도 속에서 보여지는 모습이 상식에 어긋나는 모습의 중심에 개신교 지도자들과 그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모습 때문입니다. 사실 그 모습이 개신교 전체를 대표하는 것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그들의 모습이 크게 부각되다보니 한국교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무척 좋지 않습니다.

특히나 신앙의 측면을 너무 정치적으로 해석하게 되면서 생기는 부작용으로 보입니다. 우리의 현대사에서 그렇게 영향을 크게 미친 사건이 있습니다. 6.25 전쟁입니다. 북한이 공산주의를 택하면서 남침을 하게 되었습니다. 공산주의 치하에서 살 수 없었던 이들이 남한으로 이주하면서 북한의 공산주의에 대한 혐오감이 극도로 치달았습니다. 특히 남한에 정착하게 된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자신과 조상들이 살아오던 삶의 터전을 잃게 되어 새로이 정착한 곳에서는 무척이나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이들은 부산이나 서울, 혹은 대전 등 각지에서 시장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남한은 대부분이 농경문화였기 때문에 그들이 정착할 수 있는 곳은 없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일찍부터 중국 쪽과 무역이 활발했기 때문에 경제활동에 대한 이해가 남다르게 빨랐습니다. 이들의 경제활동은 우리나라의 경제구조 변화와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모습은 마치 유럽의 모습과 비슷했습니다. 유럽에서는 가톨릭에 의해서 핍박을 받던 개신교인들이 프랑스, 스페인 등에서 대거 스위스와 독일, 네덜란드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서 프랑스와 스페인 등은 산업혁명에 뒤처지게 되었고, 무역경쟁에서 북유럽의 국가들의 비약적인 발전이 이루어졌습니다. 유럽에서는 오랜 동안 종교로 인한 전쟁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백년전쟁(1337~1453), 30년 전쟁(1618~1648) 등이 그러합니다. 이러한 종교적인 신념의 차이로 인한 갈등이 전쟁이라는 참극을 불러일으킨 것이었습니다. 결국 이런 모습이 후에는 제1차, 제2차 세계대전까지 이어진 측면이 있습니다.

미국의 남북전쟁(1861~1865)은 우리가 ‘노예해방’과 관련되었다고만 배웠지만, 내용을 좀 깊이 살펴보면 북쪽은 상업 중심이었고, 남쪽은 농장 중심이었습니다. 또한 신앙적으로도 북쪽은 장로교와 회중교회가 중심이었고, 남쪽은 보수적인 침례교가 중심이었습니다.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국 우선주의’가 남쪽의 보수적인 영향을 깊이 받고 있습니다.

신앙이 서로에 대한 배려와 이해라는 측면,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라는 측면을 잘 이해하고서 출발해야 하는데, 자신들의 기득권이나 경제적 상황이 그 안에 깊이 깔려서 작용하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는 듯합니다. 아니, 지도자들은 잘 알면서도 사람들에게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이용하는 모습입니다. 이런 모습이 우리나라에도 동일하게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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