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간에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랫 저)를 읽었습니다. 아래에 요약한 것을 적어보았습니다.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위협을 받고 있다. 오랜 동안 다름으로 인해 내전과 갈등을 겪고 난 이후에 서로에 대한 이해와 협력이라는 틀로 민주주의를 만들어 왔다. 정치 경쟁자가 적으로 변할 때 정치는 전쟁으로 전락하고 민주주의 제도는 무기로 바뀐다. 그 결과 사회는 끊임없이 위기를 맞게 된다.

트럼프는 독재의 성향을 강력히 드러냈다. 선출된 독재자가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선택하는 세 가지 전략이 있다. 그것은 심판을 매수하고, 상대편 주전이 뛰지 못하도록 막고, 경기 규칙을 고쳐서 상대편에 불리하게 운동장을 기울이는 것이다. 견제와 균형도 중요하지만, 미국 정치에서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였던 것은 상호 관용과 자제라고 저자들은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이 권력을 사용할 수 있음에도 말이다.

사회는 기본적으로 ‘불문율’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법적 근거를 갖고 있거나, 법제화된 것은 없다. 그러나 독재를 하고자 하는 이들은 이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깨뜨린다. 대표적인 경우가 트럼프가 150년간 백악관에 반려견을 들이지 않는 전통으로 한 순간에 깨뜨려버렸다.

트럼프는 민주주의 생존에 중요한 규범을 포함하여 여러 다양한 불문율에 도전하려는 강력한 의지다. 친족을 공직에 등용하지 않는 것처럼 공사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것 역시 오랜 불문율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1차에 자신의 큰 딸 이방카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를 고위급 자문으로 임명하였다. 실정법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명백하게 법의 정신을 훼손한 행동이었다. 또한 대통령이 자신의 이해관계가 달린 사안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규범도 있다.

부정선거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은 선거제도에 대한 국민의 믿음을 짓밟는다. 선거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때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신뢰도 무너진다.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생각은 미국 정치에서 이론의 여지가 없다. 정치인들은 이러한 규범을 어기지 않기 위해 일반적으로 이야기의 주제를 바꾸거나 까다로운 질문을 받을 때 논의의 프레임을 바꾸고 혹은 부분적인 대답만 함으로써 어떻게든 거짓말을 피하고자 한다. 그러나 트럼프는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했다. 국민이 선출된 지도자를 신뢰하지 않을 때 민주주의 근간이 허물어진다. 그들이 선택한 지도자를 믿지 못할 때 선고제도의 가치는 사라진다. 저자들은 지구상에서 트럼프와 비교할 만한 대상을 찾으려면 아마도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나 니콜라서 마두로, 혹은 에콰도르의 라파엘 코레아 정도 돼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민주주의 사회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견제와 균형’, ‘관용과 자제’라는 기본 가치를 서로가 지켜야 한다. 이것은 정치의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모두가 지켜야 한다. 신앙적인 용어로 바꾸자면 ‘배려와 이해’가 필요하다. 거기에 교회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한다. 형제를 사랑함으로써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13:35))는 말씀이 교회 공동체의 기본이 되어야 하고, 그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은 ‘이해와 배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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